0 /
소년이 걷고 있었다. 단발로 짧게 자른, 빛을 받으면 황혼색이 나는 불그스름한 금발이 귀
염성 있는 외모에 어울려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다만, 표정.
만사가 짜증나 보이는 표정만 빼면 다 좋은 소년이 저 멀리서부터 잔뜩 투덜대면서 외쳤
다.
“아아, 형! 또 이런데서 책 보고있지. 정말, 어쩐지 무지 한심해 보이는 거 알아?”
소년의 외침에, 나무그늘에 앉아 가만히 바람을 느끼며 책을 보고있던 청년이 고개를 든
다. 그에 따라 청년의 은빛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응? 아, 카세틴. 어쩐 일이야?”
청년이 태평하게 웃으면서 묻자 카세틴이라고 불린 소년은 어쩐지 잔뜩 볼이 부어서는 외
쳤다.
“우으~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쾅!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고 청년은 느꼈다. 청년은 소년이 들고 있다가 던진 책의 모
서리에 맞은 이마를 문지르며 대꾸했다.
“앗차, 미안. 또 까먹고있었네. 앗하하.”
“…또라이 같아. 카세틴이 뭐야, 여자애 같이. 대체 몇 번 말하는 거야. 내! 이름은! 카세티
니벤 슈비하! 똑바로 불러!”
그렇게 외치듯 말하며 카세티니벤은 자신이 던진 책을 도로 주워들고는 청년의 옆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 바람에 향긋한 풀내음이 확 풍겨져온다.
“찾아다닌다고 얼마나 고생한지 알기나 해? 왜 항상 이런 외진 곳에 숨어 가지고 틀어박
혀서는. 쳇쳇.”
“그러면서 항상 잘도 찾아오는구나.”
“…그래서 숨어있는 거야?”
뾰루퉁하게 쏘아붙이는 소년에게 그저 하하, 웃어 보이며 청년은 보고 있던 책을 탁 소리
가 나도록 덮었다.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또 무슨 일로 날 찾아다녔니?”
그 물음에 소년은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한다.
“그래, 맞아. 형, 아레넨이 좀 보자고 하는데.”
“응?”
“…글쎄. 일단 따라와 봐.”
그리고 카세티니벤은 청년의 옷자락을 잡아서 일으켜 세우고는 어어, 하며 당황해 하고있
는 청년을 그대로 끌고 갔다.
──────────────────────────────────────────
아레넨의 방문 앞에 도착한 둘은 고급 원목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나무문을 가만히 보고 있
었다.
“좋아, 다시 시도해 볼게.”
그렇게 말하며 카세티니벤은 한번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똑똑.
“…….”
“여전히 대답이 없네.”
“시끄러.”
카세티니벤은 어쩐지 재밌는 일이라도 있는 듯 웃는 청년에게 퉁명스레 쏘아붙이고는 아까
보다 좀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쿵쿵.
“마법연구라도 하는 걸까.”
“……시끄럽네. 옆에서 쫑알대지 마.”
쾅쾅!
“…….”
“정말 안나오는데?”
“……우으으으으!!”
쾅쾅쾅쾅쾅쾅!!!
“아레넨!! 문열어!! 당장 문 열란 말이야!!”
그렇게 카세티니벤이 거의 문이 부서져라 두드려 댔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
었다.
“……음, 카세티니벤?”
“왜 그래.”
“내 생각엔 말이지…….”
청년이 그렇게 말을 꺼내는 도중,
콰아앙!!!
순간적인 폭발이 그들을 덮쳤다.
“와, 왁! 뭐야!!”
“음?”
놀라는 카세티니벤을 자신의 등뒤로 보호하며, 청년은 이미 문짝이 다 박살나버려서 안쪽
이 드러난 아레넨의 연구실을 보았다.
안쪽은 아까 그 폭발 때문에 생긴 건지, 자욱한 연기로 가득 차있어서 잘 보이진 않았다.
‘그나저나, 저 문도 꽤 비싼 걸텐데…….’
“아레넨!! 너 제정신이야?! 연구실 문 대체 몇번째 부셔먹는 거야!! 길드에서 충당해 오는
것도 정도가 있어!!”
청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카세티니벤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휘이이이───
그 때, 안쪽으로부터 바람이 불어 나오며 회색의 매캐한 연기를 밖으로 쓸어보냈다.
“우, 콜록콜록!”
카세티니벤이 눈을 찌푸리며 기침을 했다. 청년은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후후후.”
흠칫.
안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산한 웃음소리에 카세티니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 어깨를 가만히 쥐어주고는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이제야 얼굴을 보게 되는군요. 아레넨님. 이번엔 무슨 용무로 절 찾으셨나요.”
조용히 웃으며 묻는 청년에게, 대답대신 여기저기 조금씩 그슬린 자국이 있는 법의를 입은
소녀가 걸어나왔다.
어깨언저리까지 찰랑거리는 보랏빛 머리칼이 화창한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총기를 가득 담은 자수정의 눈동자가 빛났다.
소녀는 가슴을 펴며 기운차게 대답했다.
“그래, 잘 왔도다! 오늘 그대를 부른 이유는!”
잠깐 말을 멈춘 아레넨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마왕을 잡아 오너라!”
──────────────────────────────────────────
“…….”
“…….”
“…….”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방금까지 뭔가 자신에 가득 찬 포즈를 취하고 있던 아레넨이 슬
그머니 팔을 내렸다. 어쩐지 웃고 있던 표정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다.
“뭐냐. 다들 곤란한 표정 하고서는……. 내가 무슨 보증을 서달라고 한 것도 아니지 않느
냐. 그저 마왕을 잡아오라는 것뿐이건만…….”
“그게 말이 되냐, 멍청아!!”
움찔.
카세티니벤의 외침에 아레넨이 몸을 움츠린다.
“느닷없이 불러서는 하는 말이 뭐? 마왕을 잡아오라고? 무슨 곤충채집인 줄 알아?”
“오오, 그럼 보증을 서주겠단 말이냐?”
“그런 말은 한마디도 안했어!”
버럭 외치는 카세티니벤의 어깨를 살며시 쥐어주고, 은발의 청년이 침착한 목소리로 아레
넨에게 묻는다.
“마왕을 잡아서 어디에 쓰실 생각입니까?”
“으응?”
청년의 질문에 아레넨은 마치 직장부하의 실수를 발견한 듯한 상사의 표정으로 착 가라앉
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야, 자네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네, 뭐…….”
“어리석긴…….”
그리고 손가락을 흔들며 칫칫, 하고 혀를 차고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터무니없는 소리를
입에 올린 것이었다.
“마왕하면 당연히 내 연구에 필요한 재료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지 않느냐!”
“아…….”
“흠.”
다시 한 번 침묵이 주변의 대기를 짓누른다.
“그래, 뭐. 알겠어, 아레넨. 그러니까 즉, 방금 전의 폭발로 네 머리가 드디어 맛이 갔다는
말이지?”
“맛이 갔다고 하지마아!”
어쩐지 울먹이며 외치는 아레넨.
어느새 카세티니벤의 멱살을 잡고 축 늘어져있다.
“이거야 원…….”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면서 청년 역시 갈팡질팡 하고 있다.
보고 있자니 카세티니벤의 멱살을 쥔 아레넨의 주먹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어째
카세티니벤의 혈색이 점점 파랗게 변해가고 있다.
“임마! 알겠어!? 난 맛이 간 게 아니란 말이야!!”
“켁, 끄윽…….”
“저, 아레넨님!? 슬슬 위험한 것 같은데요!!”
“아.”
청년의 외침에 간신히 알아차린 듯 멱살을 놓아준다. 카세티니벤은 기절이라도 했는지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거기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아레넨은 손을 툭툭 털더니 차분
한 어조로 말한다.
“흠, 그래. 잠시 흥분했구나. 미안하게 됐다. 아무튼, 마왕을 잡아오라는 말은 진심으로 한
말이니 그리 알도록 해라. 알겠느냐, 로휴스 경.”
“네, 알겠습니다만……. 갑자기 마왕이라니 대체 어떻게 잡아오란 말입니까.”
로휴스라 불린 은발의 청년이 곤란하다는 느낌을 얼굴에 가득 담아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
다.
“내가 그것까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느냐. 알아서 잡아오도록 해라. 경의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할 테니.”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을 하고, 로휴스는 한번 예를 표한 뒤 아레넨으로부터 등을 돌려 걸어 나왔
다. 등에는 여전히 기절한 카세티니벤을 업고.